강좌 & 팁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유학생활에 관한 마지막회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좀더 리눅스적이고 로봇에 관련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6. 시련과 고통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08년 8월 가을학기부터 시작하여 유학생활은 그런대로 순조로웠습니다.
공부는 힘들고 연구는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할 지 막막했지만, 첫 술에 배부를수 있느냐
생각하며 차근차근 진행 상황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학기를 빡세게 달리고 있는 도중에 불행은 저에게 닥쳐왔습니다. 당시 저의 와이프와 돌이
지난 아이 (우진이)를 한국에 있었는데요, 그만 저의 아이가 오른 손에 부분적으로 1도가
넘는 아주 심한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한것이었습니다. 처가집에서 이전부터 경옥고라는
한방 보양제를 만들었는데, 그 중간에 꿀을 끓이는 과정이 있는데요, 그 끓는 꿀을 식히는
과정에 그 항아리에 우진이가 호기심에 손을 넣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은 인간에게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 )
저는 정말로 가슴이 찌져질 듯 아팠습니다. 아빠라는 작자가 저 멀리서 되지도 않는 멍청한
로봇 연구한다고 이러고 있고, 와이프와 아들은 그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참 그런데 비가 오면 막 쏟다 붓는다고... 저에게도 불행이 찾아 왔습니다. 학기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어서 숙제다 프로젝트다 한참 바쁜데... 한국에서 그런 사고가 있어서
저는 더없이 골이 아팠었지요. 그래서 딱히 이유도 없이 차를 타고 피츠버그 공항까지
드라이브를 나간것이었습니다. 그냥 막 한참을 달리면 좀 기분이 풀리까해서요...
하지만 참 ... 돌아오는 길에... 교통 사고를 당해 버렸습니다. 교차로에서 신호 후에
빠르게 빠져나가는 픽업트럭을 신호 초반에 빠르게 출발하는 제 차가 받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충격이 큰 중형사고 였습니다. 제 차는 앞 본닛이 상당히 찌그러져
있었고 결국 폐차가 되었었죠. 큰 충격이 있고 나서 (물론 에어백이 터지고 ) 저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제 몸이 성 한지를 첵크했습니다. 정말이지 다행이게도 몸은 괜찮은 거 같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ㅋ
무릅이 좀 아팠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을 정도니까, 전 괜찮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상대방을
살폈습니다. 헌데, 10대 후반 청년으로 보였는데 이런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핸들에 꼴아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전 바로 가서 부축하여 그 청년을 길가에 내려 않혔습니다. 다행히 의식이
있었고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때가 밤 9시 정도 였는데, 인적이 드문
교차로 였는데, 사고 후 5분 후 바로 엠뷸런스와 경찰차 3대, 견인 트럭 2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때 참 상황이 거시기 했었죠. 저는 그 때 미국에 온지 8개월째라 거의 영어가 되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그리고 교통사고라는 것 태어나서 미국에서 처음 당했는데, 6명 정도의 경찰들과
병원 측 사람들 5명, 상대방은 머리에서 피 흘리고 있고 저는 경찰들에게 추궁(?)을 당하는 것
같고... 참 그때 당시는 저 큰일 나는지 알았습니다. 뭐 유학생활이고 로봇이고 나발이고
다 끝났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경찰들에게 사건 진술을 하고 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한국인 통역사를 통해 사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제 보험회사는 프로그레시브입니다.)
제 걱정과는 다르게 사건 처리는 의외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처리되었습니다. 경찰은
이 사고를 쌍방 잘못이 없는 사고라고 결론내리고 각 보험회사는 각자 자기 고객을 보험처리
해주는 것으로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당시 참 괴로웠습니다. 사고 처리하랴 한국에 우진이 상태 점검하고 와이프 마음 달래주느라,
그리고 저도 무릅이 조금식 아파왔구요...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치유해 주었습니다. 학기를 마무리
하자마자 저는 한국으로 들어가서 와이프와 함께 우진이를 치료하였습니다. 병원에서는 피부 이식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와이프는 거절하고 아이를 한방병원으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한방으로
피부를 살려내었습니다. 참 그리고 보면 우리 와이프도 대단한 거 같습니다. 흉터가 꽤 있지만
그래도 신경이나 뼈 모든 것에 전혀 문제없이 낫게 했으니까요. 요즘도 우진이 손에 흉터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게 부모 마음인거 같습니다. 아!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하세요.
전 다시 피츠버그로 돌아왔고(5월 후반) 여름 방학을 지내고 석사 3학기를 진행하였고, 원래의 계획대로
저의 가족은 2009년 10월에 이곳으로 합류하였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역시 가족은 뭐니뭐니 해도 같이
있어야 좋은 것 같습니다. 와이프의 내조 덕으로 석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고, 또 둘째도 임신하여
벌써 2010년 8월 18일 저의 둘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하하. Brian Woosung Cho!
박사 과정 1학기를 끝낸 지금에... 저는 새로운 각오를 하고 희망을 봅니다. 와이프와 두 아이의 희생이
있는 만큼 (아빠가 박사 과정을 함에 따른) 놀라운 각오로 공부와 연구를 할려고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그럼 다음부터는 로봇의 간략한 역사와 그와 관련된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그럼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