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중에 고집이 유난히 강한 직업은 무엇일까요? 제가 개발 쪽 일을 하다 보니 만나는 분들이 대부분 엔지니어라서 고집이 센 개발자를 많이 봅니다. 고집도 쓸데없는 고집인 똥고집이 센 분도 많죠. 똥고집도 그냥 똥고집이 아니라 똥집입니다.

이렇게 똥꼬집을 피우는 것은 아무래도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개발자를 보면 학습을 통해 객관적으로 알게 되는 지식도 많겠습니다만, 어렴풋이 이해하고 경험적으로 고생 고생해서 알게 되는 주관적인(?) 지식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1+1 이 반드시 2가 아니어서,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고,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결과를 보는 경우가 있어서, 이렇게 서로 다른 경험을 한 분들끼리 싸움이 붙으면 그야말로 똥꼬집 중에 똥꼬집 싸움을 보게 됩니다.

음~ 가령 아래와 같은 질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것이 퓨즈로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퓨즈 4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4개의 퓨즈는 재질부터 저항 값까지 완전히 같다고 하고, 전류가 흐르는 시간은 실제와 같이 지연이 있다고 했을 때, 과부하가 걸렸다면 어떤 퓨즈부터 끊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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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전자공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원래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서, 컴퓨터를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서 전자공학을 선택했지만 4년 내내 뭘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자공학 대신에 수학만 실컷 공부하다 졸업했습니다. ^^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만 우연찮게 동창 둘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퓨즈 질문을 두 친구에게 했습니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저 잡담을 하기 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했는데, 이것이 두 시간 넘게 말 싸움이 날지는 몰랐습니다.

Y 라는 친구가 그것도 질문이냐며 당연히 (+)단자와 가까운 [D] 퓨즈가 먼저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L 이라는 친구가 웃으면서, "아~ 이 친구가, 당연히 (-)단자와 가까운 [A] 퓨즈가 먼저 나가지." 했습니다. Y군도 역시 웃음으로 응대하면서 전압이 높은 쪽이 먼저 끊기지, 어떻게 (-) 단자 쪽이 먼저 부하를 받냐? 라고 응대했고, 조금은 웃음기를 잃은 L군은 열에너지는 전자의 흐름이고, 전자는 (-)단자에서 나오니 당연히 [A]퓨즈가 나간다며 에너지의 흐름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얼굴이 굳어진 Y군은, "길석아, 볼펜 좀 줘봐." 그리고 제 노트에 얼렁뚱땅 그림을 그리고 연신 동그라미를 돌려 그리면서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자 볼펜을 뺐어든 L군이, 그 그림 위에 선을 이렇게 저렇게 그으면서 역시 열변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Y군이, 그리고 또 L군.

그 이상은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도 못하지만, 기억한다고 해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여하튼 저는 그때부터 두 시간 넘게 고개만 좌우로 돌리기만 했습니다만, 아니 이게 왜 이렇게 진지해 져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려도 멈추지를 않더군요.
 
오래된 카세트를 뜯어 보니 퓨즈와 퓨즈를 고정하는 금속까지 빨갛다 못해 시커멓게 녹이 슬어 있네요. 녹이 묻어 나오는 퓨즈를 보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만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지 또 궁금해 지네요. 여러 번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던 이 질문을 또 이렇게 궁금해 지는 것도 똥고집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