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영국의 디자이너 애냐 힌드마치(Anya Hindmarch)가 “I'm not a plastic bag” 이라고 프린트된 면 가방을 선보인 이후, 에코백은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닌 일상 생활 속 친근한 친환경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에코백은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에게 들려지며,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는 제품이 되었다. 우리는 에코백 하면 친환경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것으로만 에코백을 완전한 친환경적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코백 이면에 숨겨진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글, 사진 | 차고운 객원기자(calig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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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백! 이름부터 멋지다. 가죽 일색의 잇백(It Bag) 사이에 나홀로 유니크함을 풍겨주며 착용만으로 환경애호가의 컨셉을 심어주니, 얼마나 섹시한 아이템인가. 거기에 재료비 절감 가능하겠다(일반적으로 에코백 제작에는 면 소재가 사용되며 저렴한 편에 속함), 만드는 공정 간단해 인건비 절약 가능하겠다, 이것 참 다재다능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천가방에 예쁜 이미지들과 자신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결합해 ‘에코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받는 고객들도 좋고, 환경을 중시한다는 기업 이미지까지 구축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들고 다닐 때마다 기업 광고판이 되는 셈이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물건인가. 장점이 많은 물건답게 몇 년 사이 무수히도 많은 에코백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 공짜로 받아놓은 에코백이 쌓여가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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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에코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상품 제작자의 입장이 되어 한번 찬찬히 살펴 보자. 요즘 다양하고 우수한 디자인의 에코백이 많이 나오고 가운데, 파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일단 ‘돈’을 버는 게 1차 목표이기에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상품과 함께 시장 상황을 리서치하고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디자인”이 아닌 “제작”에 포커스를 맞춘다.

우리 나라의 친환경 디자인 기업들은 주로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자금의 대량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초기 제작 수량을 많이 잡을 수가 없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천 구입도 많이 해야 싸지고, 나염이든 디지털이든 인쇄도 많아야 저렴해지고, 만드는 공장의 인건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비싸게 만들어서 내놓으면 그만큼 또 많이 팔리기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원가를 최대한 낮추는 수밖에 없다. 원가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재료, 공임 등을 무조건 최대한 깎아야 한다. 공장에 가서 ‘다음엔 많이 할께요’ 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더라도 깎아야 한다. 깎아주는 입장도 기분 나쁘고, 깎아 달라는 사람도 기분이 안 좋다. 양쪽 모두 중소기업인데, 같이 제살 깎아 먹는 상황으로 간다.
둘째, 디자인을 단순하게 만든다. 새로운 패턴을 가미할수록,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수록, 여러 가지 색깔을 쓸수록 디자인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지만 그것이 쉬운일만은 아니다.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가능성으로 최대한 팔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하라고 강요한다.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지만 분명 쉽지 않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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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염 인쇄를 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에코백 인쇄는 크게 디지털 인쇄와 나염 인쇄로 나뉜다) 사실 디지털 인쇄는 단가가 올라갈지언정 소량 인쇄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나염의 경우, 50장 이하의 제작은 샘플로 취급을 하여 작업을 해주지 않는다. 50장 이하는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염은 한 컬러의 판을 만드는데 5만원 내외의 돈이 든다. 그래서 컬러 하나를 기준으로 샘플 한 장을 찍어도 5만원 가량이 들게 된다.(2가지 컬러라면 10만원 정도가 되는 셈) 따라서, 적은 수량의 프린트 작업을 하게 되면 단가의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한 번 만든 판으로 1,000장을 찍는 것과 30장을 찍는 것은 분명 다르니 말이다. 재고 부담이 큰 중소 기업은 100개 이상을 인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기에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할 때 마다 다른 인쇄 업체를 수소문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소량 제작 문제로 인해 업체와 마찰을 빚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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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염 인쇄를 해 본적이 있거나 근처를 기웃거려 본 사람이라면 염료 냄새가 좋지 않다는 정도는 알 것이다. 작업하는 장인들은 인쇄물감에 더럽혀진 옷을 입고 머리 아픈 냄새를 맡으며 약품을 섞고 있다. 일반적인 나염 인쇄에 들어가는 잉크는 친환경이 아니다. 환경 친화적인 잉크를 계속 개발중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분명치 않고, 가격 또한 비싸기에 일반적인 사용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고 에코백 인쇄하는 사람들이 장인 대접을 받느냐면 그 또한 아니다. 그래서 작업장에서 젊은 기술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듯 친환경과 거리가 먼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을 과연 진짜 친환경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애매한 문제인 듯 하다.

제작하는 입장에서 에코백에 특별한 그래픽을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량 인쇄 작업을 진행한다 면 한 장 당 인쇄비가 최소한 3,000원 내외가 될텐데 이렇게 되면 소비자 판매 가격이 10,000원 이상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보통 원가에서 3배 이상 올려야 남는다. 인건비, 물류비, 매장 수수료 등 포함 ) 10,000원 비싸지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1만원짜리 가방이 2만원 된다면 사겠는가? 아무래도 그래픽은 포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래픽을 빼고 가격을 낮췄다고 해보자. 밋밋하고 그래픽 없는 에코백이 싸다고 팔릴까? 그런 것은 아마 이미 집에 몇 개쯤은 있을 것이다. 그래픽 인쇄 없이 훌륭한 에코백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에코백 디자인에 제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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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환경 친화적인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중소기업에게 에코백 제작은 많은 과제를 준다. 값싸고 질 좋은 친환경 잉크 개발과 소재의 사용, 제작환경의 친환경성 등. 물론 지금도 모두 가능할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지불할 수 있다면 말이다. 대기업이라면 가능은 하겠다. 에코백은 과연 누구를 위해 제작되고 존재하는 것인가?

모두 함께 웰빙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진정한 친환경 상품은 명품으로 불릴 만하다. 이름만 에코가 아닌 올바른 친환경 상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구매할 줄 아는 대중의 지혜가 늘어간다면, 에코백은 진정한 친환경 명품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지금의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순수 환경친화적 에코백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어 질 것이다.

 

 

출처: 디자인정글(http://jungle.co.kr/index.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