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일본의 동북부 지진을 비롯해,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8년 중국 쓰촨 성의 대지진까지 세계 전역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크고 작은 사건은 항상 존재했지만, 대규모 인명 피해와 오랜 시간의 회복 기간이 필요한 세계적 재난 역시 그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재난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해야 하며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한다. 참혹한 재난 현장 속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된다. 그다음에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소한 갖춰야 할 삶의 조건들을 채우는 일을 시작한다. 디자인은 그 거리를 좁혀가는 역할을 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Kit to Serve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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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서 사람을 구해낸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뿐 아니라, 그 뒤에 닥쳐올 공포와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다 할지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약품이 재빨리 제공되고 간단한 처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응급 의료 키트는 그래서 구호 물품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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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직후의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상처라고 해도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작은 상처나 부상 등에 대비하기 위한 Kit to Serve Humans는 일반적인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솜이나 가위 등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이 담겨 있다. 환자를 눕힐 수 있는 시트와 응급 상황 시 비상 콜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나볼 수 있다.

Laef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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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 학교의 강당이나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임시보호소에 머무르게 된다. 몸과 마음의 긴장과 불안으로 인해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부피를 많이 차지 않으면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LaefBed’는 얼핏 보기에는 네 개의 종이 상자를 이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견고해 보이지도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몸을 뉘여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상자가 이중으로 조립되며, 그것을 다시 견고한 끈으로 연결해주는 압력 때문이다. 모듈의 옆 면에는 제작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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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을 이어 붙여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듈 수에 따라 테이블, 어린이용 침대로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모듈에 있는 구멍에 소지품을 넣어둘 수도 있어 편리함을 더 했다.

A Life With The St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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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 동북부 지역의 쓰나미와 연이어 터진 방사능 유출 사태는 많은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하게 했다. 이러한 고민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삶에서 느끼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재난 상황에서 바로 떠올리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런 접근과는 별개로 생존을 위한 체온유지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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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아키 히비노는 이러한 고민 끝에 A Life With The Stove를 만들었다. 이 난로는 일반적인 형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불을 피우는 것만으로 스토브나 스마트폰 충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기가 없는 상황 속에서 불을 피우는 것만으로 다양한 기능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불을 안전하게 피우기 위해 여닫이문을 만들었다.

disaster relief toi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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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은 물건을 옮길 때 쓰는 수레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이동식 화장실이다. 재난 현장에서는 당장 생존 문제가 아닌 다른 일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고자 하는 욕구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일 중의 하나이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보호 시설은 사람 수에 비해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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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에서 여러 차례 회자가 되었던 일회용 화장실과 크게 다른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임시 보호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제품을 조립할 때는 나사나 드라이버가 필요하지 않고, 동전이나 칼로도 할 수 있다. 또한 생분해성 팩을 사용해 친환경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재난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다가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할퀴고 지나간다. 이곳에서 만나본 디자인 제품은 그 자체로 재난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의 위험을 넘고, 삶의 공간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알려줌으로써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 디자인정글